검열자일기 #7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출처] 검열자일기 #7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작성자 Unbeaten Path
2002년 음화 전시 혐의로 자신의 그림 30여점이 압수되어 소각되는 고통을 당한 화가 최경태의 말이다.
검열자 일기 #4에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사진을 내리기 전에 방문했던 몇몇 사람들은 '음란물이 맞는 거 같다'며 나의 판단에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나는 그분들의 견해를 100% 존중한다. 아니 최경태 화가의 말처럼 그분들은 문제의 사진을 게시한 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수" 있다. 심지어는 그 사진을 재게시한 나에게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그리고 국민의 말을), 국민의 세금을 들여서 규제하고 차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 각자의 주관대로 자신에게 불쾌하거나 자신의 성적 감수성을 해한다고 해서 삭제를 하기 시작한다면 예술도 죽고 문화도 죽고 아니 문명이 죽을 것이다.
내 판단으로는 내가 올린 문제의 사진들은 사람들마다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오히려 내가 아는 법원의 기준으로 보자면 법적으로는 음란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2002년 최경태 화가 사건에서도 법원은 성기노출 자체를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성행위를 암시하는 자세, 표정, 및 배경을 문제삼았다고 한다(판결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올린 문제의 사진들은 지금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는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과 같은 수위의 것이었다(아래 사진). 당시 통신소위회의에서 심의하여 차단 결정한 수백건과 달리 성기 외에는 아무런 성적 서사나 성적 기표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음란물로 보이더라도 법적으로 음란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적인 심의기준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오럴섹스를 포함한 노골적인 성행위를 세밀하게 7분간의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2002년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도 실질적인 상영불가판정을 받았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판정을 거쳐 상영되었고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국가기관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심의위원의 직무 중의 하나이다.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문제의 사진들을 지인들과 같이 보기위해 게시했던 것이다.
이런 사진들은 귀하다. 즉 국가기관이 일단 음란하다고 판단하며 모든 매체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의 음란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자체가 불가능하다. 국가의 검열기준을 국민이 감시하고 비판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성적 노출은 고고한 예술적 표현이 될 수도 있고 강력한 정치적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쿠르베의 그림을 보라. 최근 여성의 옷차림이 강간을 유발한다는 어느 외국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슬럿워크(Slut Walk. 우리나라에서는 '잡년행진'이라고 명명했는데 '창녀행진'이 정확하다)는 여성들이 브래지어만 입고 행진을 한다. 위에서 말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소외되고 고립된 논인들의 생활을 재조명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2002년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었다. 2005년 대법원 판결의 대상이 되었던 김인규 미술교사의 성기노출작품들 일부는 자본주의의 성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고 풍자하려는 것이었다(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음란물이라고 판정하였지만 호된 비난을 받았다).
장정일, 최경태, 김인규, 박진표 등. 이들의 소송을 먼발치에 보면서 '자기 자식과도 같은 예술품들에 국가가 칼날을 들이댈 때 얼마나 아플까' 속으로 '지못미'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고 법학자지만 예술가들이 미적인 목적으로 작품들을 만든 것처럼 나는 법적 음란의 기준에 대한 토론을 위해 검열자일기 #4를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의연했던 것처럼 나도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들 하나도 억울하지 않고 각자의 견해를 존중한다. 국가검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검열자일기 #7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작성자 Unbeaten Path
출저)박경신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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