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는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 할 뻔 했고 박용하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울증으로 자살할 뻔 했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자살을 하지 않았고 박용하는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안젤리나 졸리의 우울증과 박용하의 우울증의 차이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문화적 특성의 차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이 정신 치료를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로 매도 되기 때문에 쉽게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우울증(정신장애=정신질환)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그녀를 정신병이 있는 정신병자라고 취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안젤리나 졸리처럼 심각한 우울증(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정신(심리학)치료를 사회적인 편견이나 인식 없이 정신(심리학)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박용하의 자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차이를 말하자면 위의 링크해 놓은 두개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기자들의 자세였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심각한 우울증(정신장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 있을 정도의 치료를 받는 동안 기자들은 쉬 쉬하며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이란 가정을 해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화적으로 비춰보면 박용하가 심각한 우울증(정신장애)로 정신(심리학)치료를 받았다면 안젤리나 졸리와 같이 기자들이 쉬 쉬하며 조용하게 지켜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특종만을 잡기 위한 직업 정신이 투철한 기자들이 윤리와 도덕이 뒷전이 되어 버린 문화에서 박용하가 정신(심리학)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되면 기사의 글머리에 어떤 제목으로 쓸지 가정만 하더라도 안타까움이 흐릅니다.
무사히 치료를 마쳐서 자살이라는 불안정한 정신을 이겼다하더라도 바로 안젤리나 졸리처럼 연예계에 복귀하기란 힘들 것이란 가정을 하게 됩니다.
박용하의 자살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우울증(정신장애)로 자살을 하는 사람이 표면으로 드러난 연예인들 수보다 일반인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우울증을 이겨낸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있어서 연예인 한 사람이 수백명, 수 천명의 일반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사회, 문화가 형성되길 바라기때문입니다.
writen by reporter-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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